오랜기간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서 기어코 병이 나고야 말았다.
주변에서는 말한다. 일이 너무 많았나 보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현대인이자 직장인의 숙명은 업무 스트레스일테니까.
그래서 일을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랬더니, 내가 정말 이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은게 맞는건가 회고하게 되었다.
지금 당장 잠시 일을 쉴 수는 있지만, 밥벌이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영원히 도망갈 수가 없기에, 정확한 원인을 알고싶었다.
사람들의 여러 경험담과 논문, 기사들을 찾아보면서 내린 결론은,
어떤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몸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6개월 정도는 누적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6개월 전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았다.
여느 직장인처럼 술 좀 먹고, 과로좀 하고. 그게 다였던 것 같은데.
잠을 못 잔 것도 아니고, 밥을 못챙겨 먹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속만 탔다.
이유를 알아야 병도 낫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러다, 일을 그만두고 나면 남은 시간을 뭘 하며 보내고 싶을지 생각해봤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누워있고 빈둥거리라고 했고, 나 또한 그럴 작정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내키지가 않는다.
아무런 할 일 없이 침대나 소파아 누워만 있으면, 몸은 편안하지만 머릿 속은 엉망이 되고 만다.
온갖 번뇌와 잡념이 통통 튀어다니고, 계곡의 물길처럼 아주 빠른 속도로 여기 저기 흘러다닌다.
그 때 알았다.
나의 스트레스의 근원은 "일"이 아니라는 것.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는 "아미노 상태" 그 자체라는 것.
아무런 노력을 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방치해두었을 때 내 머릿 속 엔트로피는 무한히 증가한다.
엔트로피의 증가를 멈추기 위해서는 나의 의지가 가미된 어떠한 일을 해야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어떤 계의 엔트로피를 줄이려면, 외부에서 그 계에 물리적인 ‘일(work)’을 해 줘야만 한다. 물리적인 의미에서 일이란 쉽게 말해서 힘을 통해 에너지를 전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어지러워진 책상을 정리하려면 우리는 힘을 들여 일해야만 한다. 미지근한 물을 얼음으로 만드는 냉장고는 모터를 돌려 냉매를 순환시키고, 이 냉매가 온도를 낮춰 얼음을 만든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커다란 고립계로 생각한다면 전체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책상을 힘들여 정리하면 몸에서 열이 나며, 냉장고의 모터가 돌면 역시 열이 난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양의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공교롭게도 과학의 입장에서도 어떤 대상의 엔트로피를 줄이려면 "일"을 해야 한다.
그 "일"을 하면, 그 일을 하기 위한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포인트는, 내 머릿 속의 세계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걸 할 지, 저걸 해야 하는지, 뭐가 더 나은지, 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돈을 많이 벌고 싶은지, 소소하게 살고 싶은지, 내가 지금 행복한지, 이따 뭐 먹을지, 언제 퇴근해서 몇 시에 잘지 등등......
끊을래야 끊어낼 수 없는 생각들이 계속해서 내 머릿 속을 헤집고 다닐 때 그 상황이 스트레스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일"을 가미하기로 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의 의미로서의 일이 아니라, 내 정신의 아미노 상태를 잠재워 줄 수 있는 일.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에 따르면, 나의 수준에서 조금 더 높은, 그래서 조금 어려운 난이도의 업무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몰입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하려고 한다.
무엇이 되었든, 그 공부를 해서 얼마나 잘먹고 잘살아야지 하는 결과론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내 혼란 상태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몰두하고, 집중하고, 연구하고, 이해하고, 궁리하는 것.
그게 내 병이 나을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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